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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음식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방울소리가 들린다는 돼지껍질 튀김(油炸猪皮)

M
관리자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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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0]

“활홍감이 극치에 이르면 마치 귓속에서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고 한다.”

 

 

어느 문학작품에 나오는 표현이다. 음식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너무 맛있어서 흡사 방울 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는 별명의 음식이 있다. 한자로 울릴 향(響), 방울 령(鈴)자를 쓰고 중국어로는 샹링이라고 발음한다. 얼마나 대단한 요리이기에 이런 별명을 지었을까 싶은데 알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 돼지껍질 요리다. 

 

돼지껍질 튀김
돼지껍질 튀김

 

돼지껍질을 놓고 뭘 그리 호들갑이냐, 역시 속된 말로 '대륙 뻥'이라고 하는 중국식 과장은 믿을 게 못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편견을 갖고 그렇게 폄하할 것만도 아니다. 행간을 읽어야 중국, 중국인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다. 

 

돼지껍질 요리를 놓고 방울 소리(響鈴) 운운하며 요란을 떨었던 사람은 청나라 말 최고의 권력자이면서 이 세상 맛있는 음식은 모두 맛보았다는 서태후다. 이런 서태후가 언제나 군침을 흘리며 그리워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 서태후를 보필했던, 지금으로 치면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덕령이라는 여관(女官)이 쓴 회고록 『어향표묘록』에 관련 기록이 보인다. 서태후 스스로 말하기를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음식으로 고기가 붙어있는 돼지껍질을 볶은 후 그 껍질을 다시 기름에 지지면 껍질이 바삭바삭해져 맛이 특별한데 사람들이 모두 군침을 흘렸다면서 그런 만큼 북방에서는 이 음식을 방울 소리라는 별명으로 불렀다고 회고했다.

 

이렇듯 일종의 돼지껍질 튀김 요리에 대한 서태후의 기억이 남다르다. 만주족 출신의 청나라 말단 관리의 딸로 태어나 성장기에 힘겹게 살았다는 서태후가 어렸을 적 먹었던 추억의 맛일 수도 있고 혹은 중국 북방 내지 만주지역의 특별한 별미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만주족을 포함해 중국인 대다수가 돼지고기를 좋아하니 서태후의 입맛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국인들이 돼지고기 좋아하고 많이 먹는다는 것이야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특수 부위인 돼지껍질 또한 우리와는 달리 중국인 대다수가 즐겨 먹는다. 그런 만큼 청나라 말의 서태후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의 최고 권력자였던 모택동 또한 돼지껍질을 즐겨 먹었다고 전해진다. 

 

공산혁명 시절과 국공 내전 시기 힘들었을 때 후난 성 출신인 모택동은 매운맛을 좋아해 고추와 함께 볶은 돼지껍질을 먹으며 기운을 차렸다고 하는데 다만 입소문으로만 전해질뿐 기록으로는 보이지 않아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모택동 우상화에 따라 최고 권력자가 서민 음식인 돼지껍질을 즐겨 먹었다면서 인민과 함께 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만들어 낸 전설일 수도 있고, 다른 많은 경우처럼 중국 음식점에서 역사상 유명 인물을 끌어들여 만든 마케팅용 스토리일 수도 있다. 물론 모택동 역시 돼지껍질을 사랑한 중국인이었으니 그 역시 돼지껍질 고추 볶음을 즐겨 먹었을 수도 있다. 

 

실제로도 모택동은 돼지껍질과는 친숙했던 것 같다. 모택동이 1926년부터 1941년에 활동했던 내용을 근거로 펴냈다는 『모택동농촌조사문집』을 보면 중국 농촌에서 돼지껍질 음식을 많이 먹고 있고 또 영양 문제 해결을 위해 돼지껍질을 보급해야 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중국인의 돼지껍질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전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저피동(猪皮凍)이라는 요리에 얽힌 이야기로 우리말로 그대로 올리면 얼린 돼지껍질이다. 

 

옛날 동북지방에 큰 머리에 역시 귀가 커다란 낯선 동물이 나타났다. 돼지였다. 처음 보는 동물이라 어떻게 먹을지 몰라 고민하는데 어느 지혜로운 노인이 나타나 "돈(炖)" 한마디를 외치고 사라졌다. 푹 삶아 먹으라는 뜻으로 곧 돼지고기 수육이다. 

 

너무나 맛있어 고기를 깨끗이 먹어 치위 솥에는 고깃국물과 껍질만 남았다. 다음날 다시 먹으려고 솥을 열었더니 국물의 기름과 껍질이 굳어 고체가 됐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데 다시 노인이 나타나 칼로 굳은 덩어리를 잘라먹고는 또 "묘(妙)"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맛이 오묘하다는 뜻이니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는 너도나도 달려들어 솥에 남은 굳은 국물과 껍질을 몽땅 먹어치웠다. 

 

다소 허황되고 싱겁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돼지껍질 편육 혹은 돼지껍질 묵과 비슷한 중국의 저피동(猪皮凍)이 생겨난 유래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국인의 돼지껍질 사랑이 대단한데 그 뿌리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3세기 초 한나라 때 의학서인 『상한론』에 돼지껍질을 약으로 썼다고 나오는데 보통 중국에서는 돼지껍질이 맛이 달고 성질은 차며 음기를 늘리고 허한 기운을 보충하며(滋阴补虚) 열을 내리고 목을 부드럽게 한다고 말한다. 콜라겐이 풍부해 피부미용에 좋고 모발 보호에도 좋다고 하니 돼지껍질 좋아하는 한국인의 말과도 다르지 않다.

 

미처 다 언급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돼지껍질 요리가 발달한 중국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껍질까지 사랑한 중국이니 중국인의 돼지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출처: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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