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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음식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신맛에 진심인 중국의 여름철 산매탕(酸梅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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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4.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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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1]

중국인은 신맛에 진심인 사람들이다. 한국인이 고추의 매운맛, 일본인이 간장의 짠맛에 방점을 찍지만 중국인은 식초의 신맛을 중요시한다. 

 

멀고 먼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고대 문헌 곳곳에 관련 기록이 보인다. 예컨대 춘추시대 이전인 5000년전 주나라에는 해인(醢人)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우리나라 가자미 식해나 명태 식해와 같은 생선이나 고기 젓갈을 관리하는 직책이다. 젓갈도 젓갈이지만 고대에는 젓갈에서 식초를 만들었으니 넓게 해석하자면 해인은 신맛을 관리하는 책임자였다.

 

중국 사람들 신맛을 얼마나 중요시했는지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산서성(山西省) 사람들은 전쟁이 나서 출전을 할 때 무기보다 먼저 식초부터 챙긴다는 것이다. 산서성은 진(晉)나라가 있었던 곳이니 옛날 중국 음식문화의 뿌리가 깃든 지역이다. 

 

신맛을 중시하는 중국인만큼 양조 발효식품인 식초의 신맛뿐만 아니라 자연산 신맛의 결정체인 매실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매실을 이용해 갖가지 음료와 요리를 만들어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여름철 전통 음료인 산매탕(酸梅湯)이다. 

 

중국의 여름철 전통 음료인 산매탕(酸梅湯)
중국의 여름철 전통 음료인 산매탕(酸梅汤)

 

지금은 갖가지 다양한 여름 음료가 있으니 산매탕 같은 전통 여름 음료를 고리타분하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달랐다. 청나라 후반 북경의 풍속을 적어놓은 풍속서 『연경세시기』에는 여름이면 사람들이 산매탕을 마시는데 장미 나무로 만든 통에 얼음물을 넣고 여기에 매실과 설탕을 섞어 만든다면서 너무나 차서 치아가 덜덜 떨릴 정도라고 기록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북경 시내 중심지인 전문(前門)과 서단(西單)에서 파는 산매탕을 제일로 친다고 했으니 당시 산매탕은 북경 시내에서 제일 잘 팔리는 여름철 음료였다. 

 

동시에 지금 중국 사람들은 차가운 음료는 몸을 상하게 한다며 한여름에도 뜨거운 차를 마시는데 청나라 말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찬 산매탕을 마신 것을 보면 당시 북경의 여름 더위가 참기 어려울 정도였거나 혹은 음양학적으로 매실의 따뜻한 기운이 얼음의 냉기를 충분히 누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맛에 진심이었기 때문인지 중국인의 매실 사랑은 고대로부터 뿌리가 깊었다. 옛날 문헌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주나라보다도 앞선 고대 중국의 상나라에 부열이라는 유명한 재상이 있었다. 원래는 죄를 짓고 성을 쌓는 부역에 동원됐던 노무자였는데 왕이 꿈의 계시를 받고 그를 현장에서 발탁했다. 

 

재상이 된 부열이 그 후 나라를 잘 다스려 명재상 소리를 들었는데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는 왕이 그를 뽑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나온다. 

 

 

"내가 술과 단술을 만들면 너를 누룩과 엿기름으로 삼을 것이고, 내가 국을 요리하거든 네가 소금과 매실(鹽梅)이 되어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성경 구절과 비슷한데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요리에 비유한 것이니 옛날 중국에서 매실은 그만큼 중요한 열매였다. 

 

삼국지에도 매실이 보인다. 조조가 군대를 이끌고 원정을 떠났을 때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이 고통을 겪었다. 그러자 조조가 멀리 숲을 가리키며 저곳에 가면 매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병사들의 입속에 침이 고이며 갈증을 이겨냈다는 망매지갈(望梅止渴)의 고사다. 조조의 간교함을 그린 내용이지만 옛날 중국에서 매실을 어떻게 여겼는지를 여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고대에는 매실 열매 자체를 조미료로 사용했지만 당송 시대 이후 매실은 다양한 요리와 음료의 재료로 쓰인다. 

 

당나라 때는 연기로 훈제한 매실인 오매(烏梅)에다 계피, 사향, 감초 등 갖가지 한약재를 첨가한 최고급 매실 음료가 등장했다. 훗날 이 음료는 조선 시대 제호탕(醍醐湯)이라는 왕실 매실 음료로 진화한다. 여기서 제호란 깨닫는다는 뜻의 산스크리스트어에서 비롯된 불교 용어로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시원하고 상큼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송나라 때는 매실 음료가 더더욱 발전했지만 이용 계층도 귀족과 부유층에서 평민들까지로 확대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시원한 산매탕을 마시며 여름철 무더위를 이겨냈다. 

 

송나라 문헌 『무림구사』에는 당시 수도였던 지금의 항주 시장에서 노매수(滷梅水)라는 음료를 팔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소금 노(滷)자를 쓴 것을 보면 염장한 매실로 만든 음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설포매화주(雪泡梅花酒)라는 음료도 있었다. 역시 송나라 문헌인 『몽양록』에 보이는데 설포(雪泡)는 눈 거품이라는 뜻이니 지금의 빙수 비슷한 것 같다. 

 

나라 황실 요리책인 『음선정요』에는 말린 매실인 백매(白梅)와 계피, 사인, 사향 등의 한약재를 이용해 매실 음료를 만든다고 나온다. 이 음료는 아마 황제를 비롯한 상류 귀족들의 여름 음료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대로부터 청나라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인들의 매실 사랑이 각별했다. 매실의 계절에 알아본 중국 매실의 역사다. 

- 윤덕노 음식문화저술가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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