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나가, 말레이 들어와"… 中 '두리안 패권' 앞세워 동남아 쥐락펴락
中, 말레이산 생두리안 수입 전격 허용
베트남산은 중금속 검출로 수입 중단
거대한 시장 앞세워 동남아 길들이기
[2024.07.01]
중국이 ‘과일의 제왕’이라 불리는 두리안의 세계 최대 소비국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우호적 관계의 국가에게는 시장을 열어주는 반면,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국가에게는 돌연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리는 식이다. 중국의 강력한 ‘두리안 패권’에 동남아 국가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중국 해관총서(관세청)는 중국 생물안전법과 검역 등 관련 요건을 충족하는 말레이시아산 생두리안의 수입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9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말레이시아와의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약속한 것이다. 이로써 말레이시아는 태국, 베트남, 필리핀에 이어 중국에 생두리안을 공급하는 네 번째 국가가 됐다.
뾰족하고 두꺼운 껍질에 싸여있는 두리안은 고약한 냄새를 풍기지만, 노란 과육은 달콤하고 버터같이 부드러워 ‘악마의 과일’이자 ‘과일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중국에서 두리안 한 통 가격은 크기·품종에 따라 200~300위안(약 3만8000원~5만6000원)을 호가한다. 수박 열 통과 맞먹는 고급 과일이지만 날개 돋힌 듯 팔리고 있다. 중국은 두리안 소비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지난해에만 67억달러(약 9조2500억원) 상당의 생두리안을 수입했다. 수입 과일 중 1위다. 4년 전인 2019년(16억달러)과 비교하면 무려 4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전 세계 수출용 두리안의 거의 전부를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중국은 이 같은 막대한 두리안 시장을 ‘동남아 길들이기’에 활용하고 있다. 최근 친중 행보를 보인 말레이시아에 시장을 열어준 것이 대표적이다. 말레이시아는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이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 문제에 상대적으로 유화적 태도를 보여왔고,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서도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참여를 허용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신흥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 가입 의사도 밝힌 상태다. 두리안 시장 진입권은 중국이 말레이시아에 주는 일종의 선물인 셈이다.
반면 비슷한 시기 중국은 베트남 18개 농장과 15개 유통업체 등 33개 공급선의 두리안 수입을 중단했다. 표면적 이유는 베트남산 두리안에서 과도한 양의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베트남은 지난해에만 20억달러어치의 두리안을 중국에 판매했다. 중국에 수출하는 전체 농산물(115억달러) 중 18%에 해당한다. 올해 1~4월에도 4억3200만달러어치를 중국에 수출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 가까이 급증했다. 그만큼 중국의 수입 중단 조치는 베트남 농가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중국이 베트남산 두리안 수입을 중단한 진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강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실용을 강조하는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유연하면서도 탄탄한 대나무 성질을 빗댄 것)’가 중국 입장에서 거슬렸을 수 있다. 베트남은 수년간 미·중 갈등 속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역내 파트너로 미국이 공을 들이는 상대다. 지난해 9월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에 직접 방문해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기도 했다. 이달 들어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베트남을 찾기도 했다. 러시아와 밀착하면 베트남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 모두를 견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중국이 식품 수입을 무기 삼아 상대국에 경고를 보내는 것은 흔한 일이다. 2012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필리핀과의 관계가 악화했을 때는 해충 문제를 들어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을 금지했다.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 정부 성향 탓에 중국은 툭하면 대만산 파인애플, 망고, 갈치와 전갱이 등 어류의 수입을 중단했다 재개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베트남 풀브라이트대학의 응우옌 탄 쭝 교수는 “(베트남의) 두리안 판매자들은 중국이 무역을 제재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