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폭발’ 中 배터리 쓴 벤츠 차량 국내 3000여대 더 있다… 국토부는 리콜 ‘고민’
국토부, 벤츠에 中 배터리 쓴 차량 ‘특별점검’ 지시
합동감식 결과 ‘차량 결함’ 원인일 경우 리콜 조치
2018년 BMW ‘불자동차’ 사태처럼 번질까 우려
“이미 리콜 전력 있는 中 배터리… 선제 조치 필요” 조언도
[2024.08.08]
인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 중 화재가 발생한 차량과 동일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 국내 3000여 대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EQE 세단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 ‘파라시스 에너지’의 제품을 장착했다. 국토교통부는 합동감식 조사 결과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나 시스템, 차체 결함 문제가 지목될 경우 리콜 명령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합동감식 조사에서 화재의 원인을 특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럴 경우 국토부는 자체 조사를 진행해 화재 원인을 특정하는 절차를 거쳐 리콜을 결정하게 된다.
문제는 화재 원인을 정확하게 특정해 리콜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일각에서는 지난 2018년 BMW 차량 화재 당시 40여 대에서 불이 난 8개월 후에야 리콜 조치를 내린 국토부가 이번에도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한다면 추가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BMW 화재 사고 당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자산 피해 규모가 큰 사고가 났고, 재발 우려로 국민적인 ‘디젤 공포증’이 확산한 바 있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적극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8일 국토부에 따르면 국내 벤츠 EQE 세단에 파라시스의 배터리 셀이 탑재된 차량은 3000여 대로 조사됐다. 국토부는 지난 주말 벤츠코리아 측에 해당 배터리를 장착한 차량에 대한 특별 점검을 권고했다. 사고 차량과 동일한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에서 또다시 화재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인천 청라국제도시에서 지난 1일 발생한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경찰은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확보하고 본격적인 원인 규명에 나섰다. 인천 서부경찰서는 지난 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과 전기차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발화 차량 제조사인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측도 감식에 동참했다.
이번 화재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를 만든 파라시스는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8위 배터리 제조사다. 지난 2017년부터 벤츠에 배터리셀을 공급하고 있다. 파라시스는 화재 발생 가능성이 제기되며 중국 내에서 한차례 리콜을 실시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중국 국영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은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특정 환경에서 배터리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있다’며 3만 대가 넘는 규모의 리콜을 시행했다. 중국 언론 등에 따르면, 파라시스는 이번에 화재가 난 벤츠 EQE 모델뿐만 아니라 EQA, EQB 모델에도 배터리를 공급 중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배터리 외에도 차량 소프트웨어나 전력 계통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하 주차장에서 화재가 난 차량은 주차 상태에서 갑자기 연기가 피어오르다가 조금 지나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충전 중이거나 시동이 걸려있던 상태도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도 전기적 신호가 계속 오가고, 이 과정에서 배터리가 과열됐을 가능성 등이 있다는 것이다. 배터리 문제가 아닐 경우 차량 제조사인 벤츠의 책임은 더 커질 수 있다.
국토부는 합동감식 결과 화재 원인으로 배터리 결함이나 차량 시스템 문제가 지목될 경우, 전량 리콜 명령을 내릴 예정이다. 사실상 조사 결과 화재의 원인이 ‘방화’가 아닐 경우 리콜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한 것이다. 자동차관리법상 자동차 또는 자동차 부품이 안전에 지장을 준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정부는 제작사에 강제 리콜 명령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제조상 결함 부위가 분명하지 않으면 리콜 명령을 내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벤츠코리아에 특별점검을 지시한 만큼, 벤츠가 점검 과정에서 이상을 발견하고 자체 리콜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18년 발생한 BMW 연쇄 화재 사건 당시 늑장 대응 비판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고, 국토부가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토부는 2018년 1월부터 BMW 차량에서 연쇄적으로 화재가 발생했는데, 약 40대의 차량에서 화재가 발생한 8월에서야 배기가스재순환장치(EGR) 결함으로 인한 리콜을 실시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는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온도가 매우 높이 치솟아 원인 물질까지 다 녹아버리는 경우가 상당해 국과수에서 ‘원인 불명’으로 결론 내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고가 난 중국산 배터리가 과거 리콜된 전력이 있는 만큼 발 빠르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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