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칭더 “中에 굴복도 도발도 않겠다”… 中 “독립은 죽음의 길”
“대결아닌 대화, 봉쇄보다 교류를”
中 자극 않으려 독립 직접 언급 안해
‘민주주의’31번-'중화민국' 3번 반복
美 “협력 기대” 日 “우정 더 깊어지길”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에게 종속돼 있지 않습니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은 20일 취임사에서 1947년 제정된 대만 헌법 1장을 읽어 내려갔다. “중화민국의 주권은 국민 전체에 있고, 중화민국 국적을 가진 자는 국민”이라고 힘줘 말하자 대만 총통부 앞에 모인 수천 명이 큰 박수로 화답했다.
라이 총통이 헌법 조항을 직접 읽은 건 대만이 이미 헌법과 법률, 군대를 가진 만큼 중국의 ‘92년 공식(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점을 확실시하려는 의도였다. 중국을 더 자극하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직접 ‘독립’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중국을 향해 “대만에 대한 정치·군사적 위협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그는 취임식 내내 대만이 세계를 지탱하는 반도체 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권위주의에 맞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 中 향해 “무력 도발 멈춰라”
라이 총통은 취임사에서 중국의 위협에 대한 우려부터 짚고 넘어갔다. 그는 “중국의 군사적 행동과 회색지대 전술(전쟁보다 낮은 수준의 정치적 도발)은 세계 평화와 안정에 최대의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대만을 합병하려는 중국의 야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국을 방어하려는 결연한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에 대해선 “굴복하지도 도발하지도 않겠다”면서 “대결 아닌 대화, 봉쇄보다는 교류를 선택하자”고 제안했다. 상호 관광 재개와 중국 학생의 대만 진학 등 우선 협의할 분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라이 총통은 2016년 차이잉원(蔡英文) 전 총통의 첫 취임사와 마찬가지로 ‘독립’을 명시하지 않았다. 차이 전 총통은 당시 “1992년 양안 기구가 다양한 공감대를 갖고 합의를 이룬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언급한 반면에 라이 총통은 ‘하나의 중국’과 관련된 내용을 아예 넣지 않았다. 대신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31번이나 반복했으며, ‘중화민국 대만’도 3번 언급해 중국과의 차이를 부각시켰다. 중화민국은 차이 전 정부가 새로 채택한 국호로, 대만을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극도로 싫어하는 표현이다.
중국은 라이 총통의 취임 연설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중국 외교부는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라고 일갈했고,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도 입장문에서 “대만 ‘독립 일꾼’의 본성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상하이협력기구(SCO) 참석을 위해 카자흐스탄에 있던 왕이(王毅) 외교부장(장관)도 “독립 주장은 대만해협의 현상 유지에 가장 위험한 변화”라고 쏘아붙였다.
◼ 3연속 집권 민진당, ‘차이 정부 계승’ 강조
집권당인 민진당은 대만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3번 연속 같은 당이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번 취임식 초반에 공개된 기념 영상에는 왼쪽에는 차이 전 총통, 오른쪽에는 라이 총통의 모습을 편집해 함께 넣었다. 두 사람이 함께 걷거나 시민들과 함께하는 모습 등도 보여주며 정권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차이 전 총통은 라이 총통 부부를 총독부로 맞이할 때부터 1시간가량 함께했다. 이후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도 모든 청중에게 중계됐다. 취임식 단상에 올라 전현직 총통들이 함께 환호를 받는 순간에 샤오메이친 부총통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취임식 만찬엔 대만 가정식 요리와 대만에서 만들어 세계에서 유행한 버블 밀크티 등 8가지 메뉴가 제공됐다. 라이 총통이 고향인 타이난에서 즐겨 먹던 ‘고구마 금귤롤’과 대만 소수민족의 요리에서 착안한 소스가 가미된 요리도 마련됐다. AFP통신은 “중국 본토와 다른 대만 고유의 정체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전했다.
이날 취임식엔 51개국의 대표단을 포함해 해외 인사 50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은 브라이언 디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 전직 관리로 대표단을 구성했고, 일본은 여야 의원 37명이 포함된 역대 최대 규모의 대표단을 보냈다. 한국은 이은호 주타이베이 대표부 대표가 참석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취임식 직전 성명을 통해 “라이 총통과 정치 전반에서 협업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축하했으며,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관방장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대만 우정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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